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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이런거 쓰면 다 망가짐
소설 <아노말리>는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두번 착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세달 전에 안전히 비행을 마친 파리발 뉴욕행 비행기와 똑같은 비행기가 동일한 승객을 싣고 다시 착륙 요청을 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과학자, 종교인, 정치인들을 소집해 미스터리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뜻밖의 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사람들은 각자 3달 뒤 또는 전의 자신의 자아를 대면하게 된다. 106일 사이에 봄이 지나간다. 그사이에 자살한 사람, 연인과 헤어진 사람, 아이를 낳은 사람 등이 있다. 106일이 지났다고 해서 우리가 육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지는 않는다. 106일은 생리적이나 신체적으로 봤을 때 0.3% 정도 변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106일의 차이를 둔 자아와 대면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와 똑같지만 106일 동안 다른 삶을 경험한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작가는 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운명은 어떻게 갈라질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Q. 자신과 동일한 존재를 맞딱뜨리는 일은 시험처럼도 느껴진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만나면 그를 좋아할 수가 없다. <아노말리>는 그런 사고실험이다.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가. 과연 나는 나를 받아들일 만큼 관용적인가. 과연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이 살고 싶은가. 내가 늘 고민하는 문제도 그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인생에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 고민은 ‘우리를 이루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바로 타자와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때 타자는 세상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두 사람을 말한다.
에르베 르 텔리에 인터뷰 인용
cf) Aphorism ; 깊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On ne s'habitue pas au laid.
C'est de la vie.
De la vie moche, mais de la vie .
우리는 추함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못생긴 생명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다.
소설 속, 우리의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Qu'est-ce que ça changerait pour eux, après tout?
Simulés ou non, on vit, on sent, on aime, on souffre,
on crée et on mourra tous en laissant sa trace, minuscule, dans la simulation.
만약에 이것이 시뮬레이션 이라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무엇이 바뀔까?
시뮬레이션이던 아니던, 우리는 살고, 느끼고, 사랑하고, 고통받고, 창조하고
이 시뮬레이션 안에 아주 작은 흔적 하나 정도를 남기고 죽을 것이다.
À qoui sert de savoir?
Il faut toujours préférer l'obscurité à la science.
L'ignorance est bonne camarade.
Et la vérité ne fabrique jamais du bonheur.
알아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항상 무지와 지식 사이에 우리는 무지를 선택해야 한다.
무지는 좋은 친구다.
진실이 행복의 원자재가 된 적은 없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가 시뮬레이션 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시뮬레이션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다시 부자로 살고 싶어하는 배신자가 나온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자꾸 앎을 추구하고 한계를 초월하려고 하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고뇌를 하는데, 오히려 이러한 고뇌에서 벗어나서 있는 그래돌의 삶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이 아닌가하는 실존주의적 의문을 제기한다.
이성의 빛이 무지를 이겨나가 왔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 들어서 이성의 힘이 잃고 과학에 대한 신뢰가 후퇴하고
각종 극단적 집단이 출연하고 있는 세태에 대하여,
Dans cette guerre que l'obscur mène contre l'intelligence.
où la raison recule pas à devant l'ignorance et l'irrationnel,
Jacob Evans revêt la cuirasse d'ombre de son espérance primitive et absolue.
지식에 저항해 어두움이 맞서 싸우는 이 전쟁.
이성이 무지와 비이성 앞에서 한발 한발 후퇴하고 있는 이 전투에 나서면서
제이콥 에반스는 자신의 원초적이고 절대적 희망으로 만들어진 그림자의 갑옷을 두른다.
La religion est un poisson carnivore des abysses.
Elle émet une infime lumière
et pour attirer sa proie, il lui faut beaucoup de nuit.
종교(절대적 믿음)는 심해의 육식어와도 같다.
아주 작은 빛을 낼 뿐이다.
먹이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아주아주 어두워야 한다.
Malgré tout, je n'aime pas trop ce mot de 'destin'
그럼에도, 나는 '운명'이라는 이 단어를 싫어한다.
Ce n'est qu'une cible qu'on dessine après coup
à l'endroit où s'est fichée la flèche.
그건 화살촉이 꽃힌 자리에 나중에 과녁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Aimer évite au moins de chercher
sans cesse un sens à sa vie.
사랑한다면 어쨌든 끊임없이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다.
인생은 원래 무의미한데 의미를 찾으면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라고 하지만, 행복을 쫓기 때문에 불행한 것. 행복이란 것은 도달 불가능한 것인데 그것에 도달하지 않는 상태를 불행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인생이 의미없게 느껴지는 것 역시 의미를 찾기 때문에 의미가 없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남긴다. 하지
만 사랑을 하는 순간 만큼은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의 역할이다.